스승의 날 일기

꽃바구니를 들고 집에가려는데 어쩐지 화장을 해야할 것 같았다. 

고백을 받았는데 ㄴ 감정공부

오랜만에 글을 씁니다. 요즘엔 일에 머리끝까지 잠겨서 지냅니다. 요즘 퇴근시간이 8시나 9시쯤 되는데 하루 12시간쯤 근무하는 샘입니다. 문제는 없고, 재미있고, 가르치는 것도 원하는 만큼 잘 하고 있고, 아이들과의 관계도 다 괜찮은데 다만 제가 걱정입니다. 지금이야 스물 몇살이니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더 나이가 먹으면 이걸로는 안되잖아요.

우리나라는 참 이상한것 같습니다. 제가 원하는 만큼의 퀼리티로 일을 해 내려면 8시에 퇴근해야 하는데 8시에 퇴근하면 집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참 적습니다. 고작해야 일기를 쓰고, 몸을 씻는 것 정도입니다. 밥을 하는 것도, 옷장을 정리하는 것도, 친구를 만나는 것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시도하기가 힘듭니다. 거기다 주말에는 거의 움직이는 것이 힘들 정도 입니다. 따라서 장기적으로 봤을때 이런 상태로 일을 계속한다는 건 무리라는 결론입니다. 뭔가 이상합니다. 사람을 더 뽑는게 정상이 아닐까 싶습니다. 물론 그렇게 해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. 그럼 결론적으로, 뭔가 대충하는 부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느부분을 대충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. 대충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마 맞는 표현일 겁니다. 일에 대한 만족도가 팍 떨어질게 뻔하고 그걸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까요.

그 결과 저는 현재 성인여성의 생활태도를 가지고 살고있지 못합니다.
고3 수험생마냥. 부모님의 서포트를 받아가며 저 할일만 허덕이며 하고 있습니다.
만약 저에게 지금같은 업무 수준을 유지하며 연애나 기타 다른 복잡한 업무를 병행하라고 하면 
절대로 해내지 못할겁니다.
뭐 이왕에 집세도 부모님께 드리며 살고있으니 누리면 되지 않는가-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

고백을 받았거든요.


일반적으로 교사란 직업은 칼퇴근을 하여 여유시간이 많은 직업으로 여겨지지 않습니까.
이전 남자친구의 경우 어떤 문제가 있었냐면.
처음에는 일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지다는 둥 이야기를 하지만
나중엔 네 원래 퇴근 시간은 4시 40분인데 나를 위해 5시에 만나는게 뭐가 문제가 되냐-가 날 사랑하지 않는거냐란 문제가 꼭 나오더라구요.
차라리 이럴때면 법정 퇴근시간이 8시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 봅니다. 

다행히도 친구는 진짜 사랑하면 4시 40분이 아니라 조퇴가 대수겠냐, 아직 그런 사람을 못만난것 뿐이다-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.
선택이란 표현을 사용하더군요. 맞는 말입니다. 선택이죠.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고 나이가 들며 자기 삶의 일정부분을 돈과 교환하는 처지다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.
... 요는 이 사람이 그렇게 중요한지 잘 확신이 안온다는 것이 되겠네요.



친구반응 : 연애하기 무섭구나. 가볍게 해. 남자 기겁해서 도망가겠다.



... 아 정말 옳으신 말씀....

.... 이긴 한데.
저는 이제 정말.
싫거든요 
그런거.
남 헤집어 놓는것도 싫고.
그런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것도 싫고.





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 참아가며 들어주더니.
넌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.
아주 다행이면서도 실망스러운 진리가 돌아왔습니다.
친구랑 사귀고 싶습니다.
왜 우리나라는 동성 결혼이 안될까요.

뭐 결론이 이상한데. 요즘은 이런걸로 고민하고 있습니다. 
그거랑 별개로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건 달콤합니다. 
시간 전체가 느슨해 지는것 같은 기분입니다. 
시계볼때마다 참 시간이랑 닮았다고 생각하는데.
딱딱하고. 막혀있고, 멤돌고, 빈틈없이 매꿔진 원이고. 그런 점들이요.

그런데 그냥 그런 사람이 하나 있고, 
나에게 전할 정도로 용기를 내 줬다는 사실 만으로. 
그 빈틈없이 이어진 33분과 34분 사이가 느슨해지고 
그 틈으로 봄바람이나 벗꽃잎 같은것이 섞여서 날아드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.
참 좋고 그래서 고맙습니다. 예전에는 이런것을 몰라서 소흘히 하고 함부로 다뤘던 것이 미안합니다. 
 



1 2 3 4 5 6 7 8 9 10 다음